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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탈시설화, 더 많은 공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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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817회 작성일 20-02-10 10:34본문
장애인 탈시설화, 더 많은 공감이 필요하다
준비와 결정에 있어 많은 사람들 긍정적인 의견 녹아들어야
요즘 장애인복지 현장의 키워드는 ‘탈시설화’와 ‘자립’이다. 용어 자체가 부드럽지 않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얼핏 장애인의 삶 전체가 심각하게 얽매어 눌려 있을 거라 오해할 여지가 충분한 이슈이다.
선배들이 한국전쟁으로 비롯된 사회 문제를 정부보다 앞서 돌봄 중심으로 시작하여 반세기 넘는 세월을 이어온 장애인복지 패러다임이었는데 변화라는 명분 앞에서 경직된 용어로 부정화된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시대의 흐름과 당사자들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법률과 정책이 마련되어 서비스 범위가 넓어진 점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초기의 이념과 정신이 그릇된 평가를 받는다는 점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뇌리에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두 가지의 문제가 무겁게 남아 있다. 그 하나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직접 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자존감의 현주소와 향후 직업적 전망’을 물어 왔을 때 분명하게 답을 주지 못한 점이다.
또 하나는 ‘중증장애를 가진 자녀나 가족들을 평생 돌봐 줄 수 있는 시설을 안내해 달라’는 의뢰자들의 요구에 대해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기억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고객들을 상대로 구두 영업을 하느라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면서도 지난날에 우물쭈물 정답을 찾지 못한 이 과제를 떠올리며 나름 가슴앓이를 한다. 마치 지병을 가진 환자처럼...
아직도 미디어를 통해 장애인복지시설의 빗나간 경영 실태나 인권유린 등에 관한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해서는 무관용 주의, 사건 중심적 내용으로 다루어져 회복불능의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그로 말미암아 사회복지적인 소중한 가치와 장점들은 간데없고 장애인거주시설 전체를 싸잡아 문제투성이라는 인식을 심어 시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만들어 버린다.
전국의 3만여 명의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인들의 꿈이 영글어 가고 약 2만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함에도 위로와 격려에는 인색하고 무성한 통제와 냉정한 비난이 더 많아 가슴이 먹먹하다.
이러한 현실을 앞에 놓고 이용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괜찮으니 안심하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허탈해하는 직원들에게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고 비전을 제시해도 되는지...?
옹색한 공간에 많은 사람이 불편하게 사는 시설 형태는 빨리 개선해야 한다. 존중이나 배려가 미흡하다면 유연성과 안정성을 충분히 불어넣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 법 테두리를 벗어나 잘못된 행위를 일삼는 부류는 최강의 처벌을 가해 뿌리 자체를 뽑아 버려야 한다. 필자는 장애인거주시설의 ‘탈시설화’와 ‘자립’의 기본은 여기서부터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료서비스와 지속적인 돌봄을 요하는 이용인을 위해 전문화된 시스템을 갖춘 시설을 충분히 확보해야 할 것이며, 고령 장애인의 행복한 미래를 담보해 줄 수 있는 주거 공간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첨단 과학이 세상을 지배한다 하더라도 사람의 생활, 정서, 나눔, 협력 그리고 행복을 위해서는 사람의 손과 마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처음 사회복지를 실천했던 선배들이 조건을 불문하고 사람을 보듬었듯이 다가올 미래에도 불편함, 외로움, 지지와 사랑을 위해서 공학적인 수단이 아닌 사람의 가슴으로 사람을 보듬어야 한다.
그야말로 이러한 바탕 위에 ‘자립’과 ‘성공’이 펼쳐져야 하며 주체와 대상을 나누기보다는 자유와 평등을 향한 설득과 이해의 발걸음을 뚜벅뚜벅 내디뎌야 한다.
사용되는 용어도 ‘탈시설화’보다는 청년이나 신혼부부를 위한 주거복지 프로젝트에 붙여진 이름들처럼 다정하고 친숙한 명칭이었으면 더 좋으리라 여겨진다.
그와 동시에 큰 규모의 시설을 개편하는 과정에 의료 기능을 부가한 모델과 고령 장애인 맞춤형 거주시설을 포함하는 설계도가 첨부되기를 주문해 본다.
그뿐 아니라 문화와 여가에 필요한 공간을 지역사회와 넓게 주고받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평생교육의 기회도 넉넉히 공유하고 기회를 부여한다면 거주시설 이용 장애인들의 사회참여는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이제껏 선택과 결정의 주도권이 공동생활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시설 운영자 쪽에 치우쳐 있었던 부분이 사실이다.
따라서 짜여진 일정표와 확정된 방향에 의해 생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최근 10년을 전후하여 이용인의 건강, 인권, 취미, 여가활동과 자기 계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택권이 개인에게 주어졌고 시설 운영에 참여하는 통로도 넓어졌다.
다만 쉽게 고칠 수 없는 건물의 구조와 지원 인력 및 외부 환경과의 연계 방안이 다 갖추어지지 않아 천천히 차분하게 변화와 개혁을 이어가는 실정이다.
또 다른 문제는 급하게 탈시설화를 감행했을 때 일반 사회가 현재의 시설보다 더 안전하고 행복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활동지원제도나 여러 이용시설이 마법처럼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인들에게 행운과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또한 탈시설화를 서둘러 추진해서 좋을 수만 있다면 누가 그 길을 막아서겠는가?
2020년 2월을 함께 하는 우리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공감이 많아야 한다. 시간을 다투거나 위기의 긴급 상황이 아니라면 문제에 앞서 대안을 말해야 하며 다른 입장에 대해서 충분히 알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많이 들어야 한다.
먼저 걸어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무시하지 말고 인정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탈시설화야 말로 모두의 공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당사자들의 요구를 행복으로 승화하는 과정이므로 상처와 아픔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준비와 결정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의 긍정적인 의견이 녹아들어 가야 한다. 그래서 훗날,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와 시설 중 가장 좋다고 판단한 공간을 언제든지 자연스럽게 선택하도록 크게 기회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모든 장애인들의 사회참여가 물 흐르듯, 봄꽃이 피어나듯 그렇게 이루어진다면, 장애인거주시설 직원들이 높은 자존감 속에 멋진 비전을 가질 것이요,
아름다운 자립의 미래를 향해 꿈꾸는 장애인의 가슴에 그 부모와 가족들이 걱정이 아닌 힘찬 응원의 함성을 보내리라 믿는다.
준비와 결정에 있어 많은 사람들 긍정적인 의견 녹아들어야
요즘 장애인복지 현장의 키워드는 ‘탈시설화’와 ‘자립’이다. 용어 자체가 부드럽지 않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얼핏 장애인의 삶 전체가 심각하게 얽매어 눌려 있을 거라 오해할 여지가 충분한 이슈이다.
선배들이 한국전쟁으로 비롯된 사회 문제를 정부보다 앞서 돌봄 중심으로 시작하여 반세기 넘는 세월을 이어온 장애인복지 패러다임이었는데 변화라는 명분 앞에서 경직된 용어로 부정화된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시대의 흐름과 당사자들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법률과 정책이 마련되어 서비스 범위가 넓어진 점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초기의 이념과 정신이 그릇된 평가를 받는다는 점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뇌리에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두 가지의 문제가 무겁게 남아 있다. 그 하나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직접 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자존감의 현주소와 향후 직업적 전망’을 물어 왔을 때 분명하게 답을 주지 못한 점이다.
또 하나는 ‘중증장애를 가진 자녀나 가족들을 평생 돌봐 줄 수 있는 시설을 안내해 달라’는 의뢰자들의 요구에 대해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기억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고객들을 상대로 구두 영업을 하느라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면서도 지난날에 우물쭈물 정답을 찾지 못한 이 과제를 떠올리며 나름 가슴앓이를 한다. 마치 지병을 가진 환자처럼...
아직도 미디어를 통해 장애인복지시설의 빗나간 경영 실태나 인권유린 등에 관한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해서는 무관용 주의, 사건 중심적 내용으로 다루어져 회복불능의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그로 말미암아 사회복지적인 소중한 가치와 장점들은 간데없고 장애인거주시설 전체를 싸잡아 문제투성이라는 인식을 심어 시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만들어 버린다.
전국의 3만여 명의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인들의 꿈이 영글어 가고 약 2만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함에도 위로와 격려에는 인색하고 무성한 통제와 냉정한 비난이 더 많아 가슴이 먹먹하다.
이러한 현실을 앞에 놓고 이용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괜찮으니 안심하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허탈해하는 직원들에게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고 비전을 제시해도 되는지...?
옹색한 공간에 많은 사람이 불편하게 사는 시설 형태는 빨리 개선해야 한다. 존중이나 배려가 미흡하다면 유연성과 안정성을 충분히 불어넣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 법 테두리를 벗어나 잘못된 행위를 일삼는 부류는 최강의 처벌을 가해 뿌리 자체를 뽑아 버려야 한다. 필자는 장애인거주시설의 ‘탈시설화’와 ‘자립’의 기본은 여기서부터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료서비스와 지속적인 돌봄을 요하는 이용인을 위해 전문화된 시스템을 갖춘 시설을 충분히 확보해야 할 것이며, 고령 장애인의 행복한 미래를 담보해 줄 수 있는 주거 공간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첨단 과학이 세상을 지배한다 하더라도 사람의 생활, 정서, 나눔, 협력 그리고 행복을 위해서는 사람의 손과 마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처음 사회복지를 실천했던 선배들이 조건을 불문하고 사람을 보듬었듯이 다가올 미래에도 불편함, 외로움, 지지와 사랑을 위해서 공학적인 수단이 아닌 사람의 가슴으로 사람을 보듬어야 한다.
그야말로 이러한 바탕 위에 ‘자립’과 ‘성공’이 펼쳐져야 하며 주체와 대상을 나누기보다는 자유와 평등을 향한 설득과 이해의 발걸음을 뚜벅뚜벅 내디뎌야 한다.
사용되는 용어도 ‘탈시설화’보다는 청년이나 신혼부부를 위한 주거복지 프로젝트에 붙여진 이름들처럼 다정하고 친숙한 명칭이었으면 더 좋으리라 여겨진다.
그와 동시에 큰 규모의 시설을 개편하는 과정에 의료 기능을 부가한 모델과 고령 장애인 맞춤형 거주시설을 포함하는 설계도가 첨부되기를 주문해 본다.
그뿐 아니라 문화와 여가에 필요한 공간을 지역사회와 넓게 주고받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평생교육의 기회도 넉넉히 공유하고 기회를 부여한다면 거주시설 이용 장애인들의 사회참여는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이제껏 선택과 결정의 주도권이 공동생활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시설 운영자 쪽에 치우쳐 있었던 부분이 사실이다.
따라서 짜여진 일정표와 확정된 방향에 의해 생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최근 10년을 전후하여 이용인의 건강, 인권, 취미, 여가활동과 자기 계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택권이 개인에게 주어졌고 시설 운영에 참여하는 통로도 넓어졌다.
다만 쉽게 고칠 수 없는 건물의 구조와 지원 인력 및 외부 환경과의 연계 방안이 다 갖추어지지 않아 천천히 차분하게 변화와 개혁을 이어가는 실정이다.
또 다른 문제는 급하게 탈시설화를 감행했을 때 일반 사회가 현재의 시설보다 더 안전하고 행복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활동지원제도나 여러 이용시설이 마법처럼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인들에게 행운과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또한 탈시설화를 서둘러 추진해서 좋을 수만 있다면 누가 그 길을 막아서겠는가?
2020년 2월을 함께 하는 우리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공감이 많아야 한다. 시간을 다투거나 위기의 긴급 상황이 아니라면 문제에 앞서 대안을 말해야 하며 다른 입장에 대해서 충분히 알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많이 들어야 한다.
먼저 걸어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무시하지 말고 인정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탈시설화야 말로 모두의 공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당사자들의 요구를 행복으로 승화하는 과정이므로 상처와 아픔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준비와 결정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의 긍정적인 의견이 녹아들어 가야 한다. 그래서 훗날,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와 시설 중 가장 좋다고 판단한 공간을 언제든지 자연스럽게 선택하도록 크게 기회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모든 장애인들의 사회참여가 물 흐르듯, 봄꽃이 피어나듯 그렇게 이루어진다면, 장애인거주시설 직원들이 높은 자존감 속에 멋진 비전을 가질 것이요,
아름다운 자립의 미래를 향해 꿈꾸는 장애인의 가슴에 그 부모와 가족들이 걱정이 아닌 힘찬 응원의 함성을 보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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