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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하는 변호사, 82년생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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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857회 작성일 20-05-20 09:48본문
연극하는 변호사, 82년생 김원영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 사용…답답함 해소, 해방감 느껴
연극하는 변호사 김원영.
자연인 김원영
그는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사용한다. 골형성부전증이란 콜라겐 합성에 문제가 생겨서 뼈조직 형성이 불안해 뼈 성장이 지체될 뿐 아니라 뼈가 잘 부러지고,
쉽게 휘기 때문에 장애 상태가 되는데 유전성 질병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가족력이 없다. 15세까지 집과 병원만 오갔다.
“주로 근현대 문학 책을 읽었어요. 그리고 누나의 사회과 부도를 보며 세계의 여러 공간들을 상상했습니다. 지금도 지도를 좋아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우울했지요. 뾰족한 물건이 있으면 스스로를 찌르고 싶은 자기파괴 충동 같은 게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하교하면서 반드시 저희 집에 들르곤 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늦게 오더라고요.
중학교 간 뒤엔 친구들 키가 확 커지고, 영어도 배우고, 격차가 아득하게 벌어지는 걸 느꼈지요.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 학력검정고시를 보기로 결심한 거죠. 주치의인 한양대병원 정형외과 교수가 특수학교를 소개해 줬어요.”
특수학교에 가기 전에는 장애인을 만나지 못했다. 그는 특수학교에서 다양한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만났고,
그 안에서 체득한 경험들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며 한국 장애인의 집단 정체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장애인 공동체 안에서만 살 수는 없고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면 빨리 경험을 해 보고 싶었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일반고등학교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였다.
“1학년 때는 상당히 힘들었어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특수학교 고등부로 다시 옮길까 생각하곤 했지요.
학교가 산에 있고, 기숙사도 열악하고, 물리적으로 못하는 게 많으니까 자존심 상할 일도 많았어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친구가 생겼어요.
기숙사와 학교에서 대여섯 명이 함께 노래방도 가고, 밤에 나와 야식도 먹고… 그리고 공부를 비교적 잘하니까 자존심을 붙들고 다닐 수 있었어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하여 사회학에 대해 공부하며 사회문제가 무엇이고 사회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알게 되었다.
물론 그의 최대 관심 사는 장애인 문제였다. 그는 졸업 후 법적·제도적 측면에서 장애인 인권문제를 해결하고자 로스쿨에 진학하고 변호사가 됐다.
2013년 첫 직장인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장애인 관련 업무를 했다. 누가 보더라도 김원영은 성공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안정적으로 펼쳐가고 있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며 법철학을 전공하며 법률가로서의 지식 기반을 든든히 다지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의문이 생겨났다. “나는 법과 제도, 규범에 의지하지 않고도 내 ‘손상된’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타인과 사회도 그럴 수 있을까?” 그는 2017년 사직서를 내고 조직을 떠나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어느 날 김원영이 연극 무대에 선다는 소식이 들렸다. 김원영은 왜 예술을 택했을까?
“비장애인의 기준에서 ‘보기 좋은’ 미학을 추구하는 대신, 자신의 몸을 두려움 없이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다.”
김원영은 대중에게 ‘글쟁이 변호사’로 각인돼 있다. 2018년 6월 펴낸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1년여 만에 9쇄를 찍었다
. 그의 첫 번째 책은 2010년 출간한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이다. 이 책도 화제가 됐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인은 희망이 중요하고 욕망은 사치로 받아들일 때였다. 두 번째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첫 번째 책이 소환되었다.
그래서 지난해 4월 개정판으로 「희망 대신 욕망」을 냈다. 이 책에서 그는 ‘매력 자원’, ‘매력 불평등’, ‘매력 차별’ 등의 개념을 이야기한다.
Q. 「실격당한…」에서 보다 더 구체적인 듯.
‘매력차별금지법’은 불가능하지만 ‘아름다운 기회 평등법’은 가능하다.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한 학교에서 오랜 시간 함께하기,
어떤 중증의 장애인이라도 거리에 나오기 편한 환경 만들기, 이들이 자기 서사를 충분히 말할 수 있게 하고 그 말을 듣는 시간을 배정하기,
,TV 프로그램에서 구체적이고 섬세한 감정과 표정을 드러내는 장애인 캐릭터를 만날 기회를 제공하기….
Q. 「희망 대신 욕망」에서 ‘야한 장애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욕망을 강조하고 싶은 거죠. 내적인 충동 말입니다. 불온하다고 할까요, 사회적 규범을 따라가는 세련된 장애인 말고요.
‘00 육갑한다’는 말의 함의가 크다고 생각해요. 어떤 존재를 자기가 생각하는 위치에 놓고, 그 선을 넘을 때 쓰는 표현이거든 요
. 거기에 맞서는 사람, 거기에 맞서는 존재가 ‘야한’ 존재라고 여깁니다. 사회가 승인하지 않은 욕망들 말이죠
.그 책 쓸 무렵, 정치적 주체로서의 장애인은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량한 장애인, 고마워하는 장애인을 거부하고, 당당히 요구하는 장애인까지는 이르렀지요.
그럼에도 사적 자아, 즉 좋아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소거된 상태는 답답하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Q. 글을 쓴다는 것은 김원영에게 어떤 의미일까?
글쓰기는 모든 작업의 기초입니다. 글로 쓰다 잘 써지지 않는 것들이 생길 때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집니다.
에세이를 쓰다가 연구논문으로 가기도 하고, 연극으로 만들기도 하죠. ‘시사 인’에서 김초엽 작가와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 곧 책으로 나옵니다.
제가 무슨 작업을 하든 추구하는 가치는 같아요.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개인의 탁월성을 발견하는 작업을 통합적으로 추구하려 합니다.
전자는 법률가로서의 김원영, 후자는 예술가로서의 김원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연극인 김원영
“중학교 때 교회에서 연극을 했어요. 어릴 때부터 에너지가 갇혀 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무대에 서자 답답함이 해소되고 ‘풀려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잊을 수가 없었어요. 대학 가서도 총연극회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3층 총연극회에 갈 수가 없었지요.
잊고 지내다가 졸업 직전 연극미학 수업에서 기말 발표로 ‘맥베스’를 공연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사실주의 연극밖에 몰랐는데, 연극이 재미있기만 한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효과적 도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스쿨 다니다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을 만들었습니다. 총연극회(대학) 친구들, 재활원(중학교) 친구들과 함께요.”
김원영이 2018년 7월 서울변방연극제에서 1인 연극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에 관한 법률>의 연극인으로서 대중 앞에 섰다.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내려오는 퍼포먼스를 했다. “옛날부터 혼자 있으면 집에서 기어다녀요.
자유롭거든요. 상체를 많이 쓰기 때문에 팔 근력이 좋은 편입니다. 혼자 음악 틀어 놓고 바닥에서 농구도 하고…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이지… 서른을 넘으면서 그런 시선에서도 자유로워졌어요.
아직 어깨도 멀쩡하 고요. 이때 아니면 안 되겠다 싶었지요. 다만 ‘프릭 쇼’(과거 장애인 등 다양한 신체를 가진 이주민을 전시하던 쇼)로 비치지 않을까 걱정은 했어요.
그런데 관객들도 변했더군요. 진심으로 좋게 봤다는 피드백에 큰 자신감을 얻었어요. 어떤 신체를 가졌든 더 이상 추하거나 이상한 게 아니라 새로운 ‘개인성’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거죠.”
두 번째 공연은 극단 애인의 <인정투쟁: 예술가 편>(서울 두산아트센터)이다. “예술가인 개인이 이제는 구식이라 여겨지는 무대 위에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야기입니다.
‘배우’ 역할을 맡은 배우가 7명 나오는데 저는 배우 3이에요. 배우들이 모두 장애인이면서 다른 신체를 갖고 있어요.
‘애인’ 단원들이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하며 형성된 안정감 같은 게 있습니다. 그 안정감 속에서 환대받는 느낌이 들어 즐거워요.
반성도 하게 되고요. 이전에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 활동할 때 저는 연극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했거든 요.
그런데 이분들은 자기 장면을 잘 만들기 위해 순간순간 진지하게 노력해요. 그 과정을 함께하는 게 정말 좋습니다.”
그가 무대에서 보여 주고 싶은 연극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섹시한 춤을 추고 싶었어요. 요즘엔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런 것보다 자유로운 어떤 것을 만들고 싶어요.
‘저 사람이 저 무대 위에서 자신이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인다’를 저도 느끼고, 관객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작업을 언젠가 하고 싶어요.”
2018년 시각예술전시 <당신의 각도>와 2019년 <정상궤도>는 그가 사진작가 이지양과 협업하여 그동안 숨기고 싶었던 몸을 드러내고,
자유로운 움직임이나 춤을 추는 장면들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시각예술로 보여 주는 전시회를 가진 것도 그에게는 또 하나의 무대이다.
변호사 김원영
그는 현재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이다. 굳이 인권변호사로 불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물론 서울지방변호사회 장애인인권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변호사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
. 김원영도 매력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끌림의 대상이 되기를 원한다.
그는 매력이 ‘개별성’에서 비롯한다고 믿는다. 지금까지의 장애인 인권운동이 평등한 권리주체로서의 증명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구체적 개인’의 발견이 절실하다고 여긴다.
Q. 요즘 우리 사회 혐오표현이 일상화되고 있다. 법적 제재가 필요한 것일까?
기본적으로 법적 규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표현과 맞서 싸우는 과정이 우리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반복된다고 외면하지 말고, 사회가 끊임없이 정색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정치인으로 조심해야 될 최저 교양에 들어가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야죠.
Q. 어떤 김원영이 꿈인가.
그는 ‘분리된 두 세계의 경계에 있다.’고 말한다.
한편에는 판사와 사무관, 의사인 친구들이 있고, 그 반대편에는 직업을 갖기는커녕 한 달에 한두 번 외출하기도 어려운 장애인 친구들이 있다.
이 갭을 좁히기 위해 김원영이 예술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Q.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자기만의 질문을 품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사람이고 싶어요. 거창한 이미지로 기억되거나 소비되고 싶지는 않고요.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다양하고 고유한 자기 영역을 만들기 위해 애썼던 사람 정도면 좋겠습니다.
그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연극 무대도 그에게는 소중하다.
혹자는 정치를 하라고 하지만 미담 인재를 찾아 꽂아 넣는 이미지 정치의 소품이 되고 싶지는 않다.
82년생 남성 김원영은 82년생 여성 김지영과는 다른 고민을 갖고 있지만 그 고민의 결은 같다. 동시대를 살면서 서로 상황이 다르다고 밀어낼 것이 아니라 삶의 결을 같이 한다면 우리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을까?
김원영
#주요경력
서울대학교 사회학과(학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법학 전공(법학전문 석사) 서울대 법과대학대학원 법철학 전공(박사과정 수료)
변호사시험 제2회 합격(2013.4.) 국가인권위원회(조사관, 2013. 10.~2017. 6.)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위원(2017. 12.~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 장애인인권소위원회 위원장(현재)
문화예술 활동: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 연구원/대표(2013~2014) 연극 <테레즈 라켕>(2014. 1) 출연 연극 <프릭쇼>(2014 서울변방연극제) 제작,
기획 연극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2019. 7 서울변방연극제) 극작/출연 시각예술전시 2018년 <당신의 각도> &
2019년 <정상궤도>(사진작가 이지양과 협업) 서울문화재단 제1회 장애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 (공동) 기획총괄(2019. 5) 연극 <인정투쟁:예술가편> 두산아트센터(2019. 10~11) 출연 등.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 사용…답답함 해소, 해방감 느껴
연극하는 변호사 김원영.
자연인 김원영
그는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사용한다. 골형성부전증이란 콜라겐 합성에 문제가 생겨서 뼈조직 형성이 불안해 뼈 성장이 지체될 뿐 아니라 뼈가 잘 부러지고,
쉽게 휘기 때문에 장애 상태가 되는데 유전성 질병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가족력이 없다. 15세까지 집과 병원만 오갔다.
“주로 근현대 문학 책을 읽었어요. 그리고 누나의 사회과 부도를 보며 세계의 여러 공간들을 상상했습니다. 지금도 지도를 좋아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우울했지요. 뾰족한 물건이 있으면 스스로를 찌르고 싶은 자기파괴 충동 같은 게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하교하면서 반드시 저희 집에 들르곤 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늦게 오더라고요.
중학교 간 뒤엔 친구들 키가 확 커지고, 영어도 배우고, 격차가 아득하게 벌어지는 걸 느꼈지요.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 학력검정고시를 보기로 결심한 거죠. 주치의인 한양대병원 정형외과 교수가 특수학교를 소개해 줬어요.”
특수학교에 가기 전에는 장애인을 만나지 못했다. 그는 특수학교에서 다양한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만났고,
그 안에서 체득한 경험들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며 한국 장애인의 집단 정체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장애인 공동체 안에서만 살 수는 없고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면 빨리 경험을 해 보고 싶었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일반고등학교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였다.
“1학년 때는 상당히 힘들었어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특수학교 고등부로 다시 옮길까 생각하곤 했지요.
학교가 산에 있고, 기숙사도 열악하고, 물리적으로 못하는 게 많으니까 자존심 상할 일도 많았어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친구가 생겼어요.
기숙사와 학교에서 대여섯 명이 함께 노래방도 가고, 밤에 나와 야식도 먹고… 그리고 공부를 비교적 잘하니까 자존심을 붙들고 다닐 수 있었어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하여 사회학에 대해 공부하며 사회문제가 무엇이고 사회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알게 되었다.
물론 그의 최대 관심 사는 장애인 문제였다. 그는 졸업 후 법적·제도적 측면에서 장애인 인권문제를 해결하고자 로스쿨에 진학하고 변호사가 됐다.
2013년 첫 직장인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장애인 관련 업무를 했다. 누가 보더라도 김원영은 성공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안정적으로 펼쳐가고 있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며 법철학을 전공하며 법률가로서의 지식 기반을 든든히 다지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의문이 생겨났다. “나는 법과 제도, 규범에 의지하지 않고도 내 ‘손상된’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타인과 사회도 그럴 수 있을까?” 그는 2017년 사직서를 내고 조직을 떠나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그리고 어느 날 김원영이 연극 무대에 선다는 소식이 들렸다. 김원영은 왜 예술을 택했을까?
“비장애인의 기준에서 ‘보기 좋은’ 미학을 추구하는 대신, 자신의 몸을 두려움 없이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다.”
김원영은 대중에게 ‘글쟁이 변호사’로 각인돼 있다. 2018년 6월 펴낸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1년여 만에 9쇄를 찍었다
. 그의 첫 번째 책은 2010년 출간한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이다. 이 책도 화제가 됐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인은 희망이 중요하고 욕망은 사치로 받아들일 때였다. 두 번째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첫 번째 책이 소환되었다.
그래서 지난해 4월 개정판으로 「희망 대신 욕망」을 냈다. 이 책에서 그는 ‘매력 자원’, ‘매력 불평등’, ‘매력 차별’ 등의 개념을 이야기한다.
Q. 「실격당한…」에서 보다 더 구체적인 듯.
‘매력차별금지법’은 불가능하지만 ‘아름다운 기회 평등법’은 가능하다.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한 학교에서 오랜 시간 함께하기,
어떤 중증의 장애인이라도 거리에 나오기 편한 환경 만들기, 이들이 자기 서사를 충분히 말할 수 있게 하고 그 말을 듣는 시간을 배정하기,
,TV 프로그램에서 구체적이고 섬세한 감정과 표정을 드러내는 장애인 캐릭터를 만날 기회를 제공하기….
Q. 「희망 대신 욕망」에서 ‘야한 장애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욕망을 강조하고 싶은 거죠. 내적인 충동 말입니다. 불온하다고 할까요, 사회적 규범을 따라가는 세련된 장애인 말고요.
‘00 육갑한다’는 말의 함의가 크다고 생각해요. 어떤 존재를 자기가 생각하는 위치에 놓고, 그 선을 넘을 때 쓰는 표현이거든 요
. 거기에 맞서는 사람, 거기에 맞서는 존재가 ‘야한’ 존재라고 여깁니다. 사회가 승인하지 않은 욕망들 말이죠
.그 책 쓸 무렵, 정치적 주체로서의 장애인은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량한 장애인, 고마워하는 장애인을 거부하고, 당당히 요구하는 장애인까지는 이르렀지요.
그럼에도 사적 자아, 즉 좋아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소거된 상태는 답답하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Q. 글을 쓴다는 것은 김원영에게 어떤 의미일까?
글쓰기는 모든 작업의 기초입니다. 글로 쓰다 잘 써지지 않는 것들이 생길 때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집니다.
에세이를 쓰다가 연구논문으로 가기도 하고, 연극으로 만들기도 하죠. ‘시사 인’에서 김초엽 작가와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 곧 책으로 나옵니다.
제가 무슨 작업을 하든 추구하는 가치는 같아요.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개인의 탁월성을 발견하는 작업을 통합적으로 추구하려 합니다.
전자는 법률가로서의 김원영, 후자는 예술가로서의 김원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연극인 김원영
“중학교 때 교회에서 연극을 했어요. 어릴 때부터 에너지가 갇혀 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무대에 서자 답답함이 해소되고 ‘풀려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잊을 수가 없었어요. 대학 가서도 총연극회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3층 총연극회에 갈 수가 없었지요.
잊고 지내다가 졸업 직전 연극미학 수업에서 기말 발표로 ‘맥베스’를 공연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사실주의 연극밖에 몰랐는데, 연극이 재미있기만 한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효과적 도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스쿨 다니다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을 만들었습니다. 총연극회(대학) 친구들, 재활원(중학교) 친구들과 함께요.”
김원영이 2018년 7월 서울변방연극제에서 1인 연극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에 관한 법률>의 연극인으로서 대중 앞에 섰다.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내려오는 퍼포먼스를 했다. “옛날부터 혼자 있으면 집에서 기어다녀요.
자유롭거든요. 상체를 많이 쓰기 때문에 팔 근력이 좋은 편입니다. 혼자 음악 틀어 놓고 바닥에서 농구도 하고…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이지… 서른을 넘으면서 그런 시선에서도 자유로워졌어요.
아직 어깨도 멀쩡하 고요. 이때 아니면 안 되겠다 싶었지요. 다만 ‘프릭 쇼’(과거 장애인 등 다양한 신체를 가진 이주민을 전시하던 쇼)로 비치지 않을까 걱정은 했어요.
그런데 관객들도 변했더군요. 진심으로 좋게 봤다는 피드백에 큰 자신감을 얻었어요. 어떤 신체를 가졌든 더 이상 추하거나 이상한 게 아니라 새로운 ‘개인성’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거죠.”
두 번째 공연은 극단 애인의 <인정투쟁: 예술가 편>(서울 두산아트센터)이다. “예술가인 개인이 이제는 구식이라 여겨지는 무대 위에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야기입니다.
‘배우’ 역할을 맡은 배우가 7명 나오는데 저는 배우 3이에요. 배우들이 모두 장애인이면서 다른 신체를 갖고 있어요.
‘애인’ 단원들이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하며 형성된 안정감 같은 게 있습니다. 그 안정감 속에서 환대받는 느낌이 들어 즐거워요.
반성도 하게 되고요. 이전에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 활동할 때 저는 연극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했거든 요.
그런데 이분들은 자기 장면을 잘 만들기 위해 순간순간 진지하게 노력해요. 그 과정을 함께하는 게 정말 좋습니다.”
그가 무대에서 보여 주고 싶은 연극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섹시한 춤을 추고 싶었어요. 요즘엔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런 것보다 자유로운 어떤 것을 만들고 싶어요.
‘저 사람이 저 무대 위에서 자신이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인다’를 저도 느끼고, 관객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작업을 언젠가 하고 싶어요.”
2018년 시각예술전시 <당신의 각도>와 2019년 <정상궤도>는 그가 사진작가 이지양과 협업하여 그동안 숨기고 싶었던 몸을 드러내고,
자유로운 움직임이나 춤을 추는 장면들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시각예술로 보여 주는 전시회를 가진 것도 그에게는 또 하나의 무대이다.
변호사 김원영
그는 현재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이다. 굳이 인권변호사로 불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물론 서울지방변호사회 장애인인권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변호사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
. 김원영도 매력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끌림의 대상이 되기를 원한다.
그는 매력이 ‘개별성’에서 비롯한다고 믿는다. 지금까지의 장애인 인권운동이 평등한 권리주체로서의 증명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구체적 개인’의 발견이 절실하다고 여긴다.
Q. 요즘 우리 사회 혐오표현이 일상화되고 있다. 법적 제재가 필요한 것일까?
기본적으로 법적 규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표현과 맞서 싸우는 과정이 우리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반복된다고 외면하지 말고, 사회가 끊임없이 정색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정치인으로 조심해야 될 최저 교양에 들어가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야죠.
Q. 어떤 김원영이 꿈인가.
그는 ‘분리된 두 세계의 경계에 있다.’고 말한다.
한편에는 판사와 사무관, 의사인 친구들이 있고, 그 반대편에는 직업을 갖기는커녕 한 달에 한두 번 외출하기도 어려운 장애인 친구들이 있다.
이 갭을 좁히기 위해 김원영이 예술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Q.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자기만의 질문을 품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사람이고 싶어요. 거창한 이미지로 기억되거나 소비되고 싶지는 않고요.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다양하고 고유한 자기 영역을 만들기 위해 애썼던 사람 정도면 좋겠습니다.
그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연극 무대도 그에게는 소중하다.
혹자는 정치를 하라고 하지만 미담 인재를 찾아 꽂아 넣는 이미지 정치의 소품이 되고 싶지는 않다.
82년생 남성 김원영은 82년생 여성 김지영과는 다른 고민을 갖고 있지만 그 고민의 결은 같다. 동시대를 살면서 서로 상황이 다르다고 밀어낼 것이 아니라 삶의 결을 같이 한다면 우리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을까?
김원영
#주요경력
서울대학교 사회학과(학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법학 전공(법학전문 석사) 서울대 법과대학대학원 법철학 전공(박사과정 수료)
변호사시험 제2회 합격(2013.4.) 국가인권위원회(조사관, 2013. 10.~2017. 6.)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위원(2017. 12.~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 장애인인권소위원회 위원장(현재)
문화예술 활동: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 연구원/대표(2013~2014) 연극 <테레즈 라켕>(2014. 1) 출연 연극 <프릭쇼>(2014 서울변방연극제) 제작,
기획 연극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2019. 7 서울변방연극제) 극작/출연 시각예술전시 2018년 <당신의 각도> &
2019년 <정상궤도>(사진작가 이지양과 협업) 서울문화재단 제1회 장애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 (공동) 기획총괄(2019. 5) 연극 <인정투쟁:예술가편> 두산아트센터(2019. 10~11) 출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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