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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밖에서 생각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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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036회 작성일 21-07-2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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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자폐 덕분에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7-21 10:20:31

“People with differently wired brains have always existed. Some of them geniuses because of their autism, not despite it.
(뇌가 다르게 연결된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들 중에 천재인 사람들은 자폐에도 불구하고 천재가 된 게 아니라 자폐 덕분에 천재가 된다)”-Steve Silverman.

“인류는 자폐인에게 수많은 혜택을 받고 살아왔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은 대부분 자폐인에 의해 이뤄져 왔다.”

40여년 넘게 자폐 연구에 전념해 온 호주의 토니 애트우드(Tony Attwood) 박사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자폐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인류 역사상 수많은 발명가와 과학자들이 자폐인이란 사실을 안다.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덧붙이면, 우리가 모든 비자폐인에게 위대한 발명을 하고 천재가 되기를 바라지 않듯이 모든 자폐인이 위대한 발명을 하고 천재라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비자폐인이 천재성을 발휘할 때와 자폐인이 천재성을 드러낼 때의 반응은 질문부터 사뭇 다르다.

“자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폐를 극복하고 천재가 되었을까?”

내가 그랬듯, 이런 질문 자체가 자폐에 대한 무지와 자폐에 대한 편견에서 오는 생각이란 사실을 잘 감지하지 못한다.
이 질문은 발화자가 의도하던 하지 않던 이미 자폐인은 ‘지능이 낮거나 무능한 사람들’이란 생각을 전제한 반응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천재성을 발현하는 자폐인들은 ‘자폐인임에도 불구하고 또는 자폐를 극복’하고 천재가 되는 게 아니라 자폐적 특성들을 잘 운용하고 발전시킬 때 천재가 된다.

예로, 내 주변에 ‘레인맨’ 같은 성인 자폐인은 없지만, 지능이 높고 특정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고 인정을 받으며 살아가는 성인 자폐인은 종종 만난다.

만약 천재성이란 것이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힘, 좋아하는 일에 다른 차원의 강력한 집중력과 몰입하는 열정에 바탕을 둔 혁신과 창의라면,
태어날 때부터 이미 뇌가 다르게 연결된 자폐의 특성 자체가 이미 천재성을 드러내기에 좋은 조건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은 천재다. 만약 물고기를 나무 오르는 능력으로 판단한다면, 물고기는 평생 자신을 바보라 여기며 살아갈 것이다.”

현대의 진단 기준으로 보면 자폐인일거라 여겨지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어쩌면 모든 인간은 각자 고유한 특성과 기준에서 보면 천재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아직 각자 다른 물고기들을 알아보는 능력과 그들이 맘껏 헤엄칠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고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사랑하고, 자폐인 아들이 어떤 빛깔과 어떤 재능을 지닌 물고기인지,
그리고 어떤 물에서 살아야 타고난 재능과 능력대로 맘껏 헤엄을 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너는 어떻게 이게 가능해?”

가끔 깜짝 놀라 질문하는 엄마에게 아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별걸 갖고 호들갑이라는 듯 무심하다.
세상은 너무나 요지경 속이고 어쩌면 그래서 한번 살아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인지,
‘너는 어떻게 이렇게 쉬운 게 안되니…’ 벤이 어렸을 때 혼자서 종종 되뇌이던 말은 이렇게 놀라운 반전을 이뤘다.

신기하면서도 너무나 당연하게 벤의 ‘잘하는 일과 잘 못하는 일’은 비자폐아동들과는 많이 다르다.
비자폐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일은 미숙한데, 예상치도 못한 독특한(unusual) 일에는 마법처럼 놀라운 재능을 보인다.

예로, 손톱 발톱 깎는 손은 야무지지 못하고 혼자서 깎는데 하루를 다 소비할 듯한데, 본인이 좋아하는 큐브 맞추기의 알고리즘은 잘 이해하고 현란한 솜씨를 자랑한다.
혼자서 유튜브를 찾아서 더 빠르고 새로운 알고리즘을 보며 연습을 하는 손은 너무나 빠르고 유연해서 큐브는 장식으로만 쓰이는 줄 알던 나는 입이 쩍 벌어진다.
자연스럽게, ‘규정화된 틀에 맞지 않는 아이’를 키우려면 엄마의 양육도 ‘평범한 틀 안’에서 박차고 나와야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자폐 아동들은 다른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란 뜻이고, 이를 보통 자폐 연구자들이나 성인 자폐 당사자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비자폐인이 ‘상자 안’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자폐인은 ‘상자 밖’에서 또는 ‘상자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기존과는 다른 혁신적인 발명과 발견을 하는 소위 ‘천재들’ 중에 자폐인이 많은 이유가 자폐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기도 하다.

“제한된 흥미와 관심이 재능이 되고 강점이 됩니다.”

예전엔 벤의 소아과 전문의가 한 말을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세상에 대한 관심도 호기심도 없어 보이고, 낯선 사람 만나는 일도 어렵고,
낯선 장소에 데려가는 일도 어렵고,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일도 어려운 아이를 보며 앞이 캄캄하던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평범한 엄마라서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긍정적인 자극을 많이 받고 다양하고 도전적인 경험을 하고 본인의 삶을 활짝 꽃피우게 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알던 세상의 반쪽짜리 이치고 진리였다. 부모가 마음만 먹고 환경만 잘 제공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줄로만 알았고, ‘준비된 부모’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상당했다.

그런데 벤은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고, 어린 자식 앞에서 욕심을 바닥까지 내려놓는 일이 무엇인지를 아주 일찍 톡톡히 배웠다.
그래서 자폐 아동을 키우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부모들을 나는 기꺼이 이렇게 부른다.

‘아무런 조건없이 자녀를 사랑하는 법을 일찍 터득한 사람들’

레고에 빠진 아이, 기차에 빠진 아이, 공룡에 빠진 아이, 마인크래프트에 빠진 아이, 파충류에 빠진 아이, 해리포터에 빠진 아이 등,
자폐인의 ‘제한된 흥미와 관심’은 다른 말로 하면 싫고 좋음이 명확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택과 집중이 높은 아이들이란 뜻이기도 하다.

비자폐 아동들처럼 일시에 다양한 관심을 갖고 여러가지 일을 좋아 한다기 보다는 ‘한번에 한 개씩’ 흠뻑 빠져서 그 분야의 척척박사가 될 때까지 파고드는 몰입과 열정을 지닌 아이들이다.
벤이 자나깨나 손에 큐브를 들고 다니는 걸 보면 무의식 중에 이런 질문이 터진다.

“질리지도 않아?”

아이가 자폐 진단을 받으며 본인도 자폐인임을 알았다는 한 지인이 있다. IT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입지를 구축한 그는 벤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자폐에요. 자폐에도 불구하고 또는 자폐를 이겨내고 이 자리에 온 게 아니라, 자폐 덕분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어요.
많은 자폐인들은 디테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이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에요. 어릴 때는 비자폐인에 비해 느리고 답답해 보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한 분야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이해가 훨씬 깊고 방대한 경우가 많고, 세상엔 우리 같은 사람들이 꼭 필요한 분야가 있어요. 비자폐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의 삶이 비참하지 않아요.”

‘내 평생 이렇게 미치게 좋았던 것들이 있었을까?’ 가끔 진심으로 벤이 부러울 때가 있다. 큐브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에 흠뻑 빠져서 세상을 차단할 때,
큐브 관련한 지식을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조바심을 낼 때, 새로 배운 알고리즘을 같은 관심을 지닌 친구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한껏 달떠 있을 때, 다양한 큐브를 사달라고 안달일 때….

그나저나 세월이 약인 것인지 이제는 자폐의 세계에 갓 입문한 동료 엄마에게 이런 말도 해주는 선배가 되었다.

“아이의 못 말리는 흥미를 존중해주고, 흥미를 베이스 캠프 삼아서 안전하게 조금씩 세상에 대한 경험을 확장해 주면 좋아요.”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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