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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으로 희망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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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759회 작성일 21-09-0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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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지원 필요도 판정사업’으로 불편한 팔 보완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9-07 11:51:06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60년 동안 소아마비와 함께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인생이 끝나다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전태종(60) 씨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그것이 그의 인생인 줄 알았다.
편의시설이라는 것도 몰랐기에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힘들게 계단을 오르내렸다. 비틀거리는 걸음이었기에 항상 넘어질까 불안해하면서 60여 년을 그렇게 견디면서 살았다.

“예전에 소아마비로 지체 3급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참일터를 만나면서 좋은 사람들과의 동행(同行)이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장애인복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움츠러들었던 자신감은 어느 정도 회복을 했지만,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편견으로 취업은 쉽지 않았다.
취업이 쉽지 않았던 시절,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설립되어 고용공단의 취업지원으로 취직이 되었다.

“**장난감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장난감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아 장애인을 채용하는 역할도 맡게 되었다. 사이버대학에 입학했고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하였다.
**장난감 회사에 다니면서 어린 시절 가졌던 열등감에서도 벗어났다. 대학을 다니면서 자존감도 회복했고 한때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부모님이 자랑스러웠다.

“모두가 좋은 사람들과의 함께 하는 동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그의 인생은 그렇게 평온하게 흘러갈 줄 알았다.

“우리 집 뒤에 승학산이 있었습니다. 다리가 불편하다 보니 등산은 아니고 운동 삼아 산길을 오르내렸는데,
걸을 때는 항상 발밑을 조심해서 평평한 곳을 골라서 발자국을 떼고 있었는데 아차 하는 순간 그만 나둥그러지고 말았습니다.”

불편한 다리를 덜 다치게 하려고 몸을 움츠렸는데 어쩌다 보니 오른쪽으로 넘어져서 오른팔이 깔리고 말았다.

“오른팔이 일곱 조각으로 부러졌다고 합디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탄탄대로일 줄 알았더니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한동안은 절망을 모른 채 저의 앞길에는 희망만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절망이 밀려왔습니다.”

다리도 불편한데 팔까지 잘 못 쓰게 되다니, 오른팔에 깁스를 하고 30여 년의 직장생활을 마감했다. 그러나 중복장애인이 어디 그 하나뿐이겠는가.

“그동안 장난감 회사에 근무하면서 중복장애인을 많이 만나기도 했었지만 제게 그런 일이 닥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 친구들은 중복장애를 어떻게 견뎠겠는가. 그러나 또다시 시작된 방황과 고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차피 그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장벽이었다.

오른팔을 잘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 중복장애 신청은 안 했을까?

“중복장애 신청을 해 볼까 하다가 주위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안 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중복장애 등급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는데 왜 그럴까,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예전에 알고 지내던 참일터직업재활원 손 원장님을 만났습니다.”

참일터에 나와 보라고 했다. 참일터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맡겨진 직무는 ‘인쇄패드 검수’였다.
그런데 인쇄패드를 검수하려면 양손 작업이 필요했다. 그는 오른팔을 사용하기 어려우므로 인쇄패드를 검수하기가 어려웠다.

“힘든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원장님께서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셨습니다.”

참일터 원장님이 그를 위해서 찾아낸 방법은 ‘고용지원 필요도 판정사업’이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고용지원 필요도 판정사업’을 신청하였다.
공단에서 담당자가 나와서 그에게 어떤 취업 지원이 얼마만큼 필요한지 진단하고 평가하였다.

“저는 오른팔만 보완해 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고용지원 필요도 판정사업’을 통해 그에게 ‘한 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근로지원인을 파견하였다.

“저의 한 손과 근로지원인의 다른 한 손이 같이 작업하는 것이 마치 로봇과 같이 정확하다고 동료들이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전태종 씨 이야기를 듣고 그의 왼손 그리고 또 하나의 오른손 역할을 하는 근로지원인의 작업 모습을 보기 위해 참일터를 찾아 갔다. 참일터직업재활원은 초량에 있었다.

전태종 씨는 인형 머리를 인쇄하고 있었는데 전태종 씨가 왼손으로 인형 머리를 기계에 넣고 인쇄를 해서 빼내면 옆에서 근로지원인이 인형 머리에 인쇄가 정확하게 되었는지 검수를 하고 있었다.
가끔은 인쇄가 센터에 맞지 않아 삐뚤어진 불량품이 나오기도 했다.

불량품은 어떻게 할까.

“나중에 닦아서 다시 인쇄합니다.”

전태종 씨와 근로지원인은 한 팀이 되어서 인형 머리를 인쇄하고 있었는데, 전태종 씨가 작업 중에 인터뷰하려니까 불량이 나는 것 같아 필자가 죄스러웠다.

“잠깐만 스위치를 끄고 하면 안 될까요?”

그래도 된다고 해서 스위치를 끄고 사진도 한 장 찍고, 차를 마시면서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전태종 씨에게는 1남 1녀의 미혼 자녀가 있는데, 자녀들은 예전에도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지만, 지금의 모습도 자랑스러워한다고 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까지 작업을 하는데, 가끔은 회사에 납품하러 밖으로 나가기도 한단다.

“밖에 나갈 때도 근로지원인 선생이 같이 나가는데, 저의 한쪽 팔을 착실하게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일터 손 원장님 말씀이 현재 장애등급이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서 중증과 경증 두 단계지만 사실은 예전의 3급이 애매하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3급을 중증으로 분류하지만, 노동부 소관인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는 3급은 경증이므로 해당이 안 된다고 했다.
전태종 씨 같은 경우 3급이라서 고용장려금도 경증에 속하므로 근로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고용지원 필요도 판정사업’ 진단 평가에서는 근로지원을 받을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저의 인생에서 또 하나의 동행이 시작된 셈이지요.”

그렇게 시작된 동행이 벌써 1년 반이 되었단다. 앞으로 또 어떤 동행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참일터에서 그가 맡은 일을 기꺼이 흡족하고 즐겁게 일하고 있으므로 아침마다 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고 했다. 희망 동행 덕분에.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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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 (gktk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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