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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문제행동? 사회 시선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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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056회 작성일 21-08-12 08:38본문
장애 시각 인권적 관점으로 바꾸는 우리 사회 노력 필요
장애인당사자들이 장애 헤게모니를 쥐는 게 가장 중요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8-11 11:05:54
필자가 스트레스를 받고 나면, 가끔은 식당에서 몸을 움츠리면서 무릎에다 손바닥을 치려는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만약 치게 되면,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며 속으로는 이상한 애라며, 치료 좀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거다.
자폐성 장애를 이해하는 활동가나 부모 등은 저 행동이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보겠지만 말이다.
과거에는 몸을 흔드는 동작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것들을 소위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문제행동으로 본다.
‘문제행동’이란 ‘일반적으로 부모나 교사의 일상적 지도범위를 벗어나 어려움을 야기하고,
해당 연령에 기초한 규범적 행동으로 보기에 일탈된 행동이나 정상적 적응능력을 갖추지 못한 행동으로 사전적 정의를 내린다.
사실 이 행동을 하게 된 데는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의사소통을 해야 함에도, 소통해야 하는 사람과의 권력 관계로 인해
그냥 참다가 그게 폭발돼서 나온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스트레스 이외에 다른 이유는 모르겠다.
말 반복도 여전히 남아 있는데, 사실은 누군가 물었는데 내가 무식하면 손가락질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 것도 있다.
과거에는 이 행동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완전히 고쳐지지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만 갔다.
이 모든 것이 자폐성 장애의 특성이고 장애란 고칠 수 없단 걸 알았을 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장애에 대한 개념을 조금씩 정리해가면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 장애로 인한 행동을 완화할 순 있지만 완치할 수는 없단 결론을 얻었다.
그런데, 완치할 수 없는 행동에 문제행동이니, 어려운(도전적) 행동이니 이런 말을 쓴다. 다른 사람들에겐 붙이지 않지만 유독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행동엔 그렇게 한다.
그런데 자기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지만, 장애특성에서 나온 행동을 가지고 자꾸 고치라고 비장애인이 그런다면,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시각에선 어떨까? 어떤 비장애인이 지적장애인에게 일 처리하는 게 느리다고 욕하거나 폭력을 행사했을 경우,
지적장애인이 봤을 땐 그 비장애인의 행동을 어떻게 볼까? 문제행동으로 보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비장애인의 행동을 문제행동으로 부르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비장애인이 봤을 때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니 문제라고 한다.
그런데 비장애인의 행동이 장애인 등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 그렇게 말하지 않는 건 결국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행동을 분석하는 등 이들을 대상화하며 권리의 객체로 만들어버린다. 차별행위인 거다.
결국, 문제행동이란 순전히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다. 비장애인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문제로 바라본다.
더군다나 음성언어로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지적·자폐성 장애인 등의 중증장애인이 몸을 흔들거나,
반향어 등으로 행동하면 문제행동으로 바라보며 이들의 사회참여를 배제하고 낙인을 찍는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등 중증장애인의 소위 문제행동이라고 하는 행동 속엔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고픈 의도가 있다.
그러면 몸짓, 손짓 등을 하는 이들의 의사소통을 보조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중증장애인의 의사소통 보조를 권리로 바라보는 인식이 부족하고,
장애인과 관련한 관계자의 보완대체의사소통(AAC)에 대한 교육도 미흡해 의사소통 시 장애인은 배제 당하게 된다.
여기에 의사소통 보조에 대한 예산도 쥐꼬리 정도로, 국가와 지자체는 보완대체의사소통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몸짓, 발짓, 손짓 등의 비언어 의사소통을 의사소통으로 보려는 우리 사회의 인식 부족이 문제인 것이다.
지적·자폐성 장애 등 장애는 고칠 수 없음에도 장애를 고쳐야 한다는 우리 사회 인식 또한 팽배하다.
그러니 장애가 있는 자녀 부모들은 자녀 행동을 고쳐서 비장애인처럼 보여야 사회에서 무시 받거나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 것 같으니,
완치할 수 없음에도 완치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속에 자녀의 행동 치료를 위해 병원을 이리저리 찾아다닌다.
대학병원 등의 민영병원은 이런 부모들의 심리를 이용해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행동을 치료할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완치가 안 되고,
실제로는 치료행위 대부분이 비급여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행동 치료가 민영병원 등엔 수익의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계가 휘청이는 장애인 가정들도 꽤 있다.
최근엔 발달장애인법 제정 이후 발달장애인 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가 현재 7개 소 운영 중이다.
그런데 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 관련 대기 기간이 평균 9개월 ~ 1년 2개월 정도 소요되고, 의료진들의 지적·자폐성 장애에 대한 감수성 및 이해도가 낮다.
그래서 장애 자녀와 부모들은 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 이용을 꺼리게 된다.
그런데 이 센터에서 하는 행동 치료라는 것이 당사자 입장에선 강요받는 측면이 있기에 미안하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건 지양했으면 하는 입장이다.
또한,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 등에 대해 의료진들은 의료적 기준만을 가지고 장애인의 행동에 대해 치료해야 한다는 식으로 헤게모니를 취한다.
하지만 장애인의 삶과 욕구를 바라보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의료진도 있겠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여기에, 장애인 가족지원체계가 장애인과 그 가족의 욕구에 기반하기보다는 장애등급과 소득수준이라는 이열 종대에 맞춰져 지원되고,
관련 예산도 가족 부양부담을 줄일 정도로 충분하지 않고 쥐꼬리다. 그러니 장애인 자녀에 대한 책임은 대부분 오롯이 가족이 지는 시스템인 것이다.
1년 전 코로나가 터지니 그나마 중증장애인들이 다녔던 복지관, 주간활동센터 등은 문을 닫았다.
중증장애인들의 일상 생활 루틴은 깨지고, 집 안에만 갇혀 지내, 소위 말하는 문제행동은 늘어갔다.
이로 인해 중증장애인의 부모들도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호소했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다.
중증장애인 등의 의사소통 보조체계가 체계적이고, 장애인 가족지원체계가 욕구와 필요에 기반하며,
장애를 치료의 대상이 아닌 다양성으로 봤다면 방금 위의 이런 소식들을 접할 수 있었겠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결국, 코로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의 인간 이하의 삶이란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인 것이다.
’문제행동‘, ’어려운 행동‘ 등의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권리 객체로 대상화하는 부정적 어감의 말이 교과서에 버젓이 실리고 있다.
치료가 되지 않음에도 행동치료라는 명목으로 의사들은 이득을 취한다.
결국,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의 자존감과 삶의 질 하락, 피해의식 악화 및 의사 등 전문가의 헤게모니 강화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해도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질서는 깨지지 않으니, 의사들 등의 전문가와 국가, 지자체는 손해 볼 게 없고, 장애인에 대한 우월감과 차별의식은 더욱 강화될 뿐이다.
그래서 보완대체의사소통 등 중증장애인 의사소통 보조체계를 권리로 보고, 장애를 다양성으로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장애인 가족지원체계를 욕구와 필요에 기반해 다시 재설계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사회는 장애에 대한 의료적 관점에서 탈피해 인권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 등 장애에 대한 헤게모니를 의사 등 전문가가 아닌 장애인 당사자들이 쥐도록 노력하는 것이 당사자들에겐 지상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연대․단결해 싸워나갈 때 장애인들이 헤게모니를 쥐며 삶은 더욱 당당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등에게 행동 치료를 강요하지 마라. 행동 치료를 강요하게끔 부모들을 몹쓸 사람으로 만들 유인 만들지 마라.
장애인을 대상화하고 권리의 객체로 계속 유지하려는 인식과 태도, 정책에 이제는 당당하게 맞설 걸 다짐해본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등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으며, 당신들과 똑같이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란 말이다.
그러니 필자는 이렇게 말하련다.
’발달장애인 문제행동? 사회 시선이 문제!‘라고 말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장애인당사자들이 장애 헤게모니를 쥐는 게 가장 중요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8-11 11:05:54
필자가 스트레스를 받고 나면, 가끔은 식당에서 몸을 움츠리면서 무릎에다 손바닥을 치려는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만약 치게 되면,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며 속으로는 이상한 애라며, 치료 좀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거다.
자폐성 장애를 이해하는 활동가나 부모 등은 저 행동이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보겠지만 말이다.
과거에는 몸을 흔드는 동작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것들을 소위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문제행동으로 본다.
‘문제행동’이란 ‘일반적으로 부모나 교사의 일상적 지도범위를 벗어나 어려움을 야기하고,
해당 연령에 기초한 규범적 행동으로 보기에 일탈된 행동이나 정상적 적응능력을 갖추지 못한 행동으로 사전적 정의를 내린다.
사실 이 행동을 하게 된 데는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의사소통을 해야 함에도, 소통해야 하는 사람과의 권력 관계로 인해
그냥 참다가 그게 폭발돼서 나온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스트레스 이외에 다른 이유는 모르겠다.
말 반복도 여전히 남아 있는데, 사실은 누군가 물었는데 내가 무식하면 손가락질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 것도 있다.
과거에는 이 행동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완전히 고쳐지지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만 갔다.
이 모든 것이 자폐성 장애의 특성이고 장애란 고칠 수 없단 걸 알았을 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장애에 대한 개념을 조금씩 정리해가면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 장애로 인한 행동을 완화할 순 있지만 완치할 수는 없단 결론을 얻었다.
그런데, 완치할 수 없는 행동에 문제행동이니, 어려운(도전적) 행동이니 이런 말을 쓴다. 다른 사람들에겐 붙이지 않지만 유독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행동엔 그렇게 한다.
그런데 자기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지만, 장애특성에서 나온 행동을 가지고 자꾸 고치라고 비장애인이 그런다면,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시각에선 어떨까? 어떤 비장애인이 지적장애인에게 일 처리하는 게 느리다고 욕하거나 폭력을 행사했을 경우,
지적장애인이 봤을 땐 그 비장애인의 행동을 어떻게 볼까? 문제행동으로 보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비장애인의 행동을 문제행동으로 부르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비장애인이 봤을 때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니 문제라고 한다.
그런데 비장애인의 행동이 장애인 등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 그렇게 말하지 않는 건 결국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행동을 분석하는 등 이들을 대상화하며 권리의 객체로 만들어버린다. 차별행위인 거다.
결국, 문제행동이란 순전히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다. 비장애인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문제로 바라본다.
더군다나 음성언어로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지적·자폐성 장애인 등의 중증장애인이 몸을 흔들거나,
반향어 등으로 행동하면 문제행동으로 바라보며 이들의 사회참여를 배제하고 낙인을 찍는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등 중증장애인의 소위 문제행동이라고 하는 행동 속엔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고픈 의도가 있다.
그러면 몸짓, 손짓 등을 하는 이들의 의사소통을 보조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중증장애인의 의사소통 보조를 권리로 바라보는 인식이 부족하고,
장애인과 관련한 관계자의 보완대체의사소통(AAC)에 대한 교육도 미흡해 의사소통 시 장애인은 배제 당하게 된다.
여기에 의사소통 보조에 대한 예산도 쥐꼬리 정도로, 국가와 지자체는 보완대체의사소통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몸짓, 발짓, 손짓 등의 비언어 의사소통을 의사소통으로 보려는 우리 사회의 인식 부족이 문제인 것이다.
지적·자폐성 장애 등 장애는 고칠 수 없음에도 장애를 고쳐야 한다는 우리 사회 인식 또한 팽배하다.
그러니 장애가 있는 자녀 부모들은 자녀 행동을 고쳐서 비장애인처럼 보여야 사회에서 무시 받거나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 것 같으니,
완치할 수 없음에도 완치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속에 자녀의 행동 치료를 위해 병원을 이리저리 찾아다닌다.
대학병원 등의 민영병원은 이런 부모들의 심리를 이용해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행동을 치료할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완치가 안 되고,
실제로는 치료행위 대부분이 비급여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행동 치료가 민영병원 등엔 수익의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생계가 휘청이는 장애인 가정들도 꽤 있다.
최근엔 발달장애인법 제정 이후 발달장애인 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가 현재 7개 소 운영 중이다.
그런데 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 관련 대기 기간이 평균 9개월 ~ 1년 2개월 정도 소요되고, 의료진들의 지적·자폐성 장애에 대한 감수성 및 이해도가 낮다.
그래서 장애 자녀와 부모들은 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 이용을 꺼리게 된다.
그런데 이 센터에서 하는 행동 치료라는 것이 당사자 입장에선 강요받는 측면이 있기에 미안하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건 지양했으면 하는 입장이다.
또한,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 등에 대해 의료진들은 의료적 기준만을 가지고 장애인의 행동에 대해 치료해야 한다는 식으로 헤게모니를 취한다.
하지만 장애인의 삶과 욕구를 바라보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의료진도 있겠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여기에, 장애인 가족지원체계가 장애인과 그 가족의 욕구에 기반하기보다는 장애등급과 소득수준이라는 이열 종대에 맞춰져 지원되고,
관련 예산도 가족 부양부담을 줄일 정도로 충분하지 않고 쥐꼬리다. 그러니 장애인 자녀에 대한 책임은 대부분 오롯이 가족이 지는 시스템인 것이다.
1년 전 코로나가 터지니 그나마 중증장애인들이 다녔던 복지관, 주간활동센터 등은 문을 닫았다.
중증장애인들의 일상 생활 루틴은 깨지고, 집 안에만 갇혀 지내, 소위 말하는 문제행동은 늘어갔다.
이로 인해 중증장애인의 부모들도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호소했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다.
중증장애인 등의 의사소통 보조체계가 체계적이고, 장애인 가족지원체계가 욕구와 필요에 기반하며,
장애를 치료의 대상이 아닌 다양성으로 봤다면 방금 위의 이런 소식들을 접할 수 있었겠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결국, 코로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의 인간 이하의 삶이란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인 것이다.
’문제행동‘, ’어려운 행동‘ 등의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권리 객체로 대상화하는 부정적 어감의 말이 교과서에 버젓이 실리고 있다.
치료가 되지 않음에도 행동치료라는 명목으로 의사들은 이득을 취한다.
결국,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의 자존감과 삶의 질 하락, 피해의식 악화 및 의사 등 전문가의 헤게모니 강화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해도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질서는 깨지지 않으니, 의사들 등의 전문가와 국가, 지자체는 손해 볼 게 없고, 장애인에 대한 우월감과 차별의식은 더욱 강화될 뿐이다.
그래서 보완대체의사소통 등 중증장애인 의사소통 보조체계를 권리로 보고, 장애를 다양성으로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장애인 가족지원체계를 욕구와 필요에 기반해 다시 재설계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사회는 장애에 대한 의료적 관점에서 탈피해 인권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 등 장애에 대한 헤게모니를 의사 등 전문가가 아닌 장애인 당사자들이 쥐도록 노력하는 것이 당사자들에겐 지상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연대․단결해 싸워나갈 때 장애인들이 헤게모니를 쥐며 삶은 더욱 당당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등에게 행동 치료를 강요하지 마라. 행동 치료를 강요하게끔 부모들을 몹쓸 사람으로 만들 유인 만들지 마라.
장애인을 대상화하고 권리의 객체로 계속 유지하려는 인식과 태도, 정책에 이제는 당당하게 맞설 걸 다짐해본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등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으며, 당신들과 똑같이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란 말이다.
그러니 필자는 이렇게 말하련다.
’발달장애인 문제행동? 사회 시선이 문제!‘라고 말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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